이것두 참 옛날 노래다...
과거의 나는 무지 기묘한 버릇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기질이 좀 남아있다.
그게 뭐냐면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종점까지 가보는거였다. 덕분에 대구 변두리는 안 가본데가 거의 없다.
차의 진동, 횡스크롤되는 낯선 풍경, 건물이 점차 사라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인적도 드문데다 가 본 적도 없는 곳에 도달해있었다. 버스의 종점은 대개 황량하다.
여행은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벤트날도 싫어하고 티비와 영화도 거의 안 보는 걸 보면 각잡고 하는 걸 대체로 싫어하는 것 같지만. 괜히 반골이겠냐...
아무튼 이렇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물론 늘 이어폰을 끼고 있었으니 걍 바로 들으면 되지 않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딱 일부분만 기억이 나고 무슨 노랜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왜냐면 z-rock 을 통해서 들은거니까.
z-rock 이 뭐냐면... 라됴프로그램요. 얼터 음악만 줄창 나오는 afn 라됴 프로그램이였는데 이것땜에 엠디를 들으면서도 테이프 워크맨을 버리질 못했다. 내 엠디는 라됴 지원이 안되는 거라서.
(언제 봐도 촌스럽던 기존의 로고에서 조금 덜 촌스러운 로고로 최근에 바뀐 모양이다. 출처 : en.wikipedia.org)
내 취향의 곡이 나오면 녹음을 해두고 이걸 엠디로 옮겨서 듣곤 했는데 중간에 잘려있거나 양형 디제이들의 코멘트가 막 들어가있질 않나 노이즈가 섞이질 않나 녹음 퀄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건진 곡이 있으면 다행이고
녹음을 못 한 곡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반절 이상은 못 했을 것이다. 허둥지둥 테잎을 찾아 녹음준비를 들어가다 보면 곡이 끝나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대딩 1학년때의 여름 무렵에 그 버스타고 싸다니는 버릇은 절정을 이뤘다. 맥으로 이것저것 뻘짓거리를 하고(주로 만화책을 스캔해서 따라그려봤다) 모기향을 피우고 패션잡지를 뒤적거리고 스크랩을 하면서 z-rock을 듣다가 슬슬 해질 무렵이 되면
에스닉하게 생긴 크로스 파우치에 워크맨과 버스카드, 푼돈만 달랑 넣은 채로 쭈쭈바 같은 걸 입에 물고 어슬렁어슬렁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아마 그건 내 도시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맘만 먹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언제든 40분 안에 대구에 도착할 수 있지만 하도 안 가본 데가 없는데다, 지금은 이미 변두리에 살고 있으니 그런 쓸데없는 욕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경산 압량, 조야동, 하양의 효가대, 용연사, 파동, 앞산공원,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칠곡의 으슥한 어딘가, 팔공산 동화사, 이래서야 안 댕겨본 곳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
버스 안에서는 몸이 자유롭질 않다. 혼자 있을 수도 없다. 그래도 이어폰으로 청각을 차단할 수 있고, 고개를 돌리면 시야의 대부분에 풍경을 집어넣을 수 있다.
음악,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해질무렵 이 세가지만으로 나는 가히 트랜스상태 같은 왠지 거창한 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어떤 정제된 고양감 같은 걸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순간엔 기분 최고조에 아이디어도 팍팍 떠오르고 영감할아버지도 불쑥불쑥 뵙고 막 그런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맘에 드는 음악을 들으면 비슷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혼자 버스타는 상황을 좋아한다. 고령과 대구를 오가는 길에서 타는 버스도 일부러 자주 탔던 적이 있다. 요즘은 바빠서 그 짓도 못함.
종점에 도착한 순간이면 떠오르는 곡은 verve pipe의 photograph. 버프파이프 무지막지하게 좋아했었지만 z-rock에서도 취급은 좀 개듣보였지.
그리고 돌아올 때는 필연적으로 어두워지는데(당연하다. 해가 빠지기 직전 버스를 타서 종점까지 줄창 갔으니), 보이는 거라곤 드문드문한 불빛과 대구공항 이륙을 위해 오가는 뱅기에 붙은 신호용 점멸등 뿐이었다.
이게 또 분위기가 은근 초현실적이라 기분 개쩔음. 가던 때와 역순으로 오는 때에는 점점 불빛의 양이 증가해서 나중엔 폭발적으로 많아진다. 야경을 좋아하는 내가 이런 순간에 떠올리는 곡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게 제목에 썼던 스펀지의 plowed.
모든 게 캄캄해서 지면을 달리는 건지 허공답보를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별이 바닥에 깔린 것처럼 불빛이 드문드문한 풍경 사이를 질러가다 보면
특정 음악과 상황이 po합체wer해서 실제로 차체에 어떤 물성 변화같은 게 이뤄진 듯한 착각이 들고
자칫 잘못하면 우주를 부양하는것같은 기분까지 드니 그거슨 정신분열인가 ㅋ
(출처 : www.cocoabeachchamber.com)
plowed 이 곡은 버브파이프와는 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듣보 중의 상듣보라서 이때 당시엔 저퀄의 음원조차 확보하질 못했었고 제목은 커녕 후렴구 일부만 기억이 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 say a pray for me, 할때의 멜로디라인(가사는 쌈빡하게 무시)은 지금도 내게 어떤 시간, 어떤 상황에서조차 기묘할 정도의 상승신공을 시전해준다. 강도가 어느 정도냐면 반복되면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에 피로할 정도이다.
일케 말해서 좀 그렇지만, 레알 약빤 노래다.
롤코 하강할 때나 잠깐 느끼는 감각인 진공상태를 음악이 만들어준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근데 세월이 지나 이거 스맛폰으로 우여곡절끝에 다른 얼터음악라됴어플을 통해 진짜 어렵사리 제목을 알아내고 음원을 확보했을 무렵이 또 하필 시골로 오기 직전이었고
노래 가사 보니까 이건 뭐 농사하는 노랜가? 씨앗을 뿌린다느니 밭을 간다느니 뭐래는거야. 초반부에 꿈 어쩌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확 깨는 내용 ㅋ 아니, 농사 얘기가 비유적인 거라 해도 하필 농사 ㅋㅋㅋ 전원일기 주제가냨ㅋㅋㅋㅋ 알고보니 본격 귀농하라고 떠미는 노래
첨언 좀 하겠음. 보컬 완전 내 취향. 어떤 의미에서는 middle class rut 보다 더 좋다. 걸걸한 아재 목소리인데, 표현력의 폭도 좁고 조금 촌스럽게 들리는 부분도 있지만 너무 샤우팅으로 일관하지도 않고 완전 열심히 부르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좋다.
근데 얘네 왜 못 떴는지 모르겠다. 내 귀가 절대 정확하진 않지만, 그 때 당시 슈가레이 같은 애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아니라도 할수없고.
이거 초반부 사운드가 굉장히 촌스러운데다(의도한거?;;) 좀 시끄러울지도 모르니 안들어도 무방함. 어차피 곡 찾기도 힘들거임.
(출처 : www.musicstack.com)
sponge - plowed
Will I wake up some dream I made up
No I guess it's reality
What will chance us or will we mess up our only chance to connect with a dream
(chorus)
Say a prayer for me X3
I'm buried by the sound
Of a world of human wreckage
In a world of human wreckage X2
Where i'm lost and I'm found and I can't touch the ground
I'm plowed into the sound
To see wide open with a head that's broken
Hang a life on a tragedy
Plow me under the ground that covers the message that is the seed
(chorus)
Say a prayer for me X3
I'm buried by the sound
Of a world of human wreckage
In a world of human wreckage X2
Where i'm lost and I'm found and I can't touch the ground
I'm plowed into the sound
Will I wake up some dream I made up
No I guess it's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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