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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뻘글

어색한 시간 어색한 곳 어색한 사람들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훨씬 좋아한다. 일단 좌석이 더 편안하고 전부 한 방향을 보고 있어, 약간의 프라이버시라고 표현하니 이상하고 그걸 뭐라그래야 하나 암튼 고립되기에 좀더 수월하다. 이 표현도 이상하구만;;; 개인 영역의 보장? 이걸로 대충 넘김


근데 이노무 지하철은 땅밑으로만 기어다녀서 풍경은 식겁하게 단조롭지, 무슨 좌청룡 우백호도 아니고 양옆으로 사람들이 찰싹 붙어있지(어떤 경우엔 찡겨있지ㅠㅠ), 정면을 봤다간 다닥다닥 늘어놓아져있는 생판 남의 얼굴을 직면해야 해서 정자세로 앉는 것 자체가 거북스럽다.


물론 지하철이 승하차도 훨씬 수월하고 차량의 움직임도 훨씬 덜 요란하고 시간도 일정하다는 장점도 있다. 대신 역 끼리의 간격이 버스보다 멀고 계단은 지옥처럼 많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뭐 그런 거 일장일단 따지자는 게 이 글 목적이 아닌데 아 또 삼천포 아오 뭐래


암튼 난 앞서서 말했듯 쟈철보다 버스가 몇 배는 더 좋다. 풍경 구경하는 재미가 짱임.

(이미지 출처 : http://www.nexgentour.com/blogs/lessons-in-bus-travel)


쟈철을 타게 되면 솔직히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뻘쭘해서 안절부절을 못하겠다. 사람들이 날 보고 있는것도 아니고, 본다 한 들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그냥 모르는 사람들 틈에 멀뚱멀뚱 섞여있는게 싫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대개의 사람들은 '야 뭘보는데?' 소리를 듣지 않을 애매한 곳에다 시선을 두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던 시절만 해도 이어폰을 낀 사람도, 뭔가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마치 서로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중인 것 같은 연출을 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어떻게든 확보하고 시선처리에 신경쓰면서 조금이라도 덜 뻘쭘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 서글펐다. ㅇㅇ...


이런 게 싫어서 차 사는 사람도 있다에 내 양 손모가지를 걸겠음ㅋ


요즘은 그다지 서글프진 않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뭔가에 열심히 매진해있기 때문이다. 혹은 매진해있는 척을 하겠지. 비좁고 흔들리고 시끄럽고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대고 쉴새없이 가다서다하고 계속 목적지 도달 여부를 신경써야 하는 지하철 안은 뭔가에 집중하기에 진짜 엉망진창인 환경이다. 


그럼에도 이어폰으로 청각을 차단하고,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시선을 집중해서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든 고립되어보고자 한다. 이 자세는 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 너 안 건들거니까(쳐다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않을거니까), 너도 나 건들지마. 우리 서로 없는 듯이 조용히 있다가 사라지자 ㅇㅋ?'


넹, 저두 님 AT필드 부왁 찢어서 거기다 N2폭뢰 때려박을 생각없음. 폭뢰는 커녕 나도 닿고싶지 않음요;;;너만필드있냐 나도있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듯 남녀구분없이 탑승하기가 무섭게 사도를 조질 기세로 각잡고 노골적으로 주변에 AT필드부터 퐝 전개하는 동안 

(이미지 출처 : http://www.comicvine.com/evangelion/4055-54615/ 

이거 38선이니까 넘어오면 뎅강해버릴거임!)


나이 있으신 분들은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띄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탑승한다. 무슨 군장만한 짐으로 남의 등을 떠밀며 '아이고 내 좀 타자' 등의 말을 하거나, 좌석에 짐부터 던져서 공석 선점하기 같은 과감하기 짝이 없는 행동과 말로 릴린들이 애써 생성시킨 성스러운 빛의 영역을 마구 침범한다.

관계는 없지만 트리플룩


그게 옛날엔 불쾌하게 생각됐는데 나이가 든 지금은 오히려 이쪽이 자연스러운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게 된다. 되려 필사적으로 필드를 전개하는 젊은 사람들이 재밌게 보임ㅎ


나이탓인지 뭔지 솔직히 모르겠다. 암튼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계속 변한다.


이어폰을 낀 채로 middle class rut 같은 흉포한 걸 듣고 있다가도 나이드신 분이 버스 번호를 물어오면 단답형 대답이 아니라 이어폰을 뽑고 버스가 올때까지 긴 대화를 하게 되었고 ('이 춥은데 어디가시는데요'니가 그걸 왜 궁금해함?)


할매들이 버스로 이사할 기세로 거대한 짐을 들고 탑승을 하는 걸 보면 그게 고등어꼬리가 삐져나온 생선보따리든 줄줄 새는 조청단지든 옮기는 걸 거들게 되었다. 


이미 출발한 버스를 세워서 다시 탑승하면서 좌중을 한번 둘러보며 '헤헤 내가 이기 어디가는건지를 잘 몰라가...' 라고 애교 비슷한 것모에을 광역시전하는 모습에 같이 웃어주게도 되었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뭐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정하게 웃으며 서로 인사를 건네고 도움을 줍시다' 같은 거창한 표어가 생각나는데 그런 거 아니고(히키코모리가 이따위 소리를 해봤자;;)


그냥 가끔만이라도 내 눈앞의 인체들을, 장애물이 아닌 또하나의 릴린으로 의식하고 접근해도 가프의 문이 열리며 안티 AT필드가 사방천지 전개되어 사지가 LCL화해서 허물어져버리진 않더라는 덕내나는 얘기임. 기승전덕

된대도 뭐... 나쁠거 없지않나? 나만그런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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