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농을 한 건 제작년의 늦가을이었다.
오지게 추운 날, 아빠의 밴으로 이삿짐을 나르자마자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환장을 하며 달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구에서 회사를 다닐 땐 매일 밥 흉내만 낸 것 같은 걸로 대충 끼니를 때웠었기땜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그렇게 그리울수가 없었다.
막 귀농한 당시엔 날씨도 춥고 뭘 해야 할 지 몰라 빈둥대면서 밥은 맛있었던 고로, 귀농하자 마자 천고마비의 계절이랍시고 말도 아닌 주제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때 쪘던 살이 지금은 설레발치며 다니느라 다 빠졌지만 ㅠㅠ
그리고 그때 내 이삿짐을 날랐던 아빠의 밴은 현재 4륜구동차로 교체되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것이 변했지만, 2년여 가까이 귀농해서 살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아마도 입맛인 것 같다.
문밖만 나가도 다채로운 식당이 즐비한 도시와 달리, 시골에는 아무래도 외식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대신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먹거리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귀농하고 나서야 느낀 것이지만, 사람의 입맛은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많이 접하는 음식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길이 들여지고 익숙해지면서 결국 그것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귀농하기 전의 나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해서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인스턴트 음식 같은 걸 엄청 잘 먹었다. 그리고 지금도 잘 먹는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것들을 주식으로 삼지 않게 되었다. 가끔 한번씩은 몰라도, 자주 먹기엔 맛이 너무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시골에 살면서 그런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수록 도시에서 식사할 기회가 생길때마다 더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던 셈이다. 입맛이란 게 그렇게 간사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변할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기왕 시골에 왔으니 자극적인 음식을 본격적으로 물리쳐보자는 기특한 생각 같은 건 해본적도 없었다. 내 성격상 영양이며 뭐며 일일이 강박적으로 따져서 먹다간 오히려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아 안하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치 어린애가 새로운 음식을 하나씩 접해가며 좋아하는 음식의 가짓수를 늘려나가는 것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몸에 좋은 시골의 먹거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점차 깨달아갔다.
상추가 얼마나 보드라운지, 갓 딴 깻잎의 향이 얼마나 강한지, 가지가 얼마나 연하고 연근은 또 얼마나 아삭아삭한지 이전엔 미처 몰랐었다.
이제는 하루에 한끼씩이라도 야채를 푸짐하게 먹지 않으면 뭔가 되게 허전하다.
좋은 식습관을 익히기 위해서라는 목적 하나만으로 도시의 편리함과 효율성, 각종 문화들을 죄다 내던지고 귀농을 하는 건 오바일수도 있다. 하지만 늘 본래의 맛이 살아있는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시골 생활의 커다란 메리트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당에 불판 내놓고 고기 구워먹기는 시골에서의 식도락에 화룡정점을 찍는다. 굳이 일부러 날을 잡고 읍내까지 고기를 사갖고 오지 않아도 울집에 오는 손님들이 고기를 종종 사오시기 땜에 꼭 주기적으로 불판을 펼치게 된다.
나는 고기를 안 먹기땜에 송이버섯이나 마늘, 소시지 같은 걸 따로 올려놓고 구워먹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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