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촌 장마을에 대해

담촌 장마을의 탄생배경 0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15. 17:37

다들 그런다. 울엄마 요리가 최고라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둔한 입맛의 소유자라, 고기만 아니라면 어디서 뭘 먹든 간에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간만에 집밥을 먹게 되면 꼭 잠자는 내내 부대낄 정도로 퍼먹게 되고 만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진귀한 산해진미 그딴거 다 필요없고, 닥치고 집밥!


(제사때 찍은 사진. 울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전후로, 한 5일 정도 온 식구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작은 체구로, 대형 식당에서 주방장 생활을 오래 하셨다. 서빙알바조차 해보지 않은 나로선 그게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힘든 일인지 짐작이 어렵다.


엄마는 여장부타입이시고, 집에서 가만히 살림만 하는 체질이 못되셨다. 그 때문에 아빠와 종종 부딪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아빠가 지고 말았다. 엄마는 15년 가까이 장류를, 그리고 10년 정도는 효소 담그는 법을 연마하셨다. 물론 시집오시기 이전에 장담그는 비법을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으셨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외할아버지가 전수...;;; 



(여름에 볕좋을때 얼른 열어서 찍고 닫았음...; 암부차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날씨 쨍할 때 사진찍는게 젤 이쁜거같다)


아빠가 엄마의 사업구상에 혹하게 된 건 아빠가 약초로 담금주를 담그시면서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엄마가 하려는 것과 이해관계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막내작은아버지를 암으로 보내시고 아빠의 취미는 수석에서 약초산행으로 바뀌었다. 많은 주변사람들의 난치병이 아빠가 해온 약초덕에 고쳐지는 것(근데 야매잖아 이거;;;;;;;;;)에 아빠는 순수하게 기뻐하셨다.



위엄돋는 아빠의 하수오주... 집무너질까 겁난다.


나는 뭐... 대구에서 일하다가 끌려왔다. 



(구석에서 거의 누운 자세로 작업중... 이게 벌써 몇년전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당시엔 시스템 참 열악했구낰ㅋㅋ)


광고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근무하며 그림을 깨작거리는 게 재밌었기에 그걸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사업이란 것도 자꾸 얘길 들어보니 끌렸다. 정적인 나에게는 무지막지한 변화고 엄청난 도전이 될 터였다. 


비겁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꽤 희귀한 직업군이 주는 '눈만 멀쩡하면 정년퇴직없이, 사는곳과도 상관없이 일평생 할수있는 일' 이라는 보험이 없었으면 감히 뛰어들 맘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말해, 일이 크게 잘못되면 언제든지 되돌아갈 자리가 있는 셈이다. 물론 더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는 절박한 마음가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도 될동말동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의 준비과정에서 자금사정땜에 망해자빠지기보단 그림으로라도 근근히 버틸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프리랜서로도 일할 수 있으며,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좀더 수입이 높고 직원을 뽑을 정도의 규모가 되는 광고회사나 디자인 회사가 그리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일러스트레이터는 프리랜서의 형태로 일을 한다. 원래 사업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간 작업했던 것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때부터 좀더 다양한 분야의 일러스트를 소일거리삼아 하려고 했지만 지금 내 모양새는 프리랜서로서의 준비도 뭣도 없이 어거지로 일을 떠맡고는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까 노심초사하는 꼴이다.


한곳에 집중해도 될동말동한 이 판국에, 더러운 머슴 + 예스맨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중... 아놔 ㅠㅠㅠㅠㅠㅠ 나도 이럼 안된다는거 아는데... 아는데... 결국 지금 바쁜거 다 내잘못임. 징징댈때는 꿀밤한대씩 부탁드림;; 


지금은 당분간만이라도 그림이라는 토끼를 풀어줘야 할 때이다. 사실 지금은 그림을 즐기기보단 차마 거절을 못해서 하고있는 형편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투잡도 좋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투잡 쪽을 선택했고, 거기서 빚어지는 모든 문제에 내가 책임지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나는 어느쪽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