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기

귀농일기 15 - 도시의 얼굴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25. 17:10

어제 볼 일이 있어 대구를 다녀왔다. 한번씩 갔다 하면 볼일을 몰아서 보기땜에 금새 피곤해짐.


갔다가 바로 저녁에 고사농 블로그교육 보조강사일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꿀잠잤다.


여기저기 싸다니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딱히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근데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였을까. 어제, 대구에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간 시골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도시가 약간 낯설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어쩐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기분이 우울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반가운 분도 뵈었고, 대구로 나오는 길까지 옆집아저씨를 우연히 만나 같이 얘기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는 신났었다. 궁금했었던 문제도 해결했고, 바쁘기도 바빠서 우울감에 젖어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아마 미세먼지 탓이 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싶을 정도로 도시는 우중충했다. 



심지어 여기 계속 있다간 정신이 이상해질거같다는 생각까지 듬;;;;; 


그리고 까닭모를 찝찝함과 함께, 나는 태어나서부터 죽, 이런 곳에서 잘도 살았구나. 이런 기괴하고 기분나쁜 곳에서-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반복적으로 들었다.


나는 도시를 싫어하지 않는다. 뼛속까지 도시인이고, 구석구석 정든 곳도 많다. 이사를 할 땐 낯익고 안락했던 도시 안의 그 장소를 매번 아쉬워하며 떠났고, 도시의 다채로운 풍경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따뜻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 듯한 모습을 그림에 담아보고싶었고


미자들이 막 떠들어대고 깔깔거리며 지나가면 나도 그 활기를 나눠받는 것 같아 왠지 힘이 났고


가로수가 빽빽하게 심어져있는 길에 차만 돌아다닐 뿐 별 다른 것도 없다고 해도 가로수만으로도 길이 예뻐보이고


삐쭉빼쭉한 보도블럭과, 마치 차도와 나 사이를 보호해주는 듯이 줄지어 주차되어있는 차들도 싫지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



아오! 쓰고있다 보니 막 기분 꿀꿀해질라그래!!!!!


어제 내가 대구에서 본 건 도대체 뭐였을까? 그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궁상맞은 꼴은 도대체 뭘까? 

미세먼지? 전부 그놈탓인가?


왜 사람들이 다 비참하고 침통해보일까? 왜 다 무청시레기마냥 지쳐보일까? 저렇게 어쩔수없이 줄지어 떼거지로 몰려서는 서로서로 견제하면서 부대낄까봐 몸을 옹송그리고 누가 방귀라도 뀌고 지나간 것마냥 무서운 얼굴들을 하고. 미세먼지가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미세먼지를 죽입시다 미세먼지는 나의 원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답답해서 소리지르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폰을 든 채로 자리를 피하는 여자, 일을 뭐 이따위로 하냐며 언성높이는 어르신, 상대해드리면서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지는 여직원, 버스에선 나보다 열 살은 어려보이는 남자애가 여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혼자 쌍욕을 내뱉고. 서로 안 보고 있으면 '거들떠도 안본다'는 느낌이고 서로 볼 땐 힐끔힐끔거리는 시선을 주고받으며 야, 뭐보는데? 라는 표정을 하고. 의미없이 감사의 말을 연발하는 잡상인.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낄낄대는 커플. 지하철 출입문 앞에서 내리지도 않고 걸리적거리며 버티고 있는 남자. 여기 뭐야? 왜이래?;;


그저 숨만 쉬어도 비극이 꾸역꾸역 비어져나올것같은 이 압박스런 분위기 도대체 뭐임?


ㅠㅠ 아무래도 맑은 날 다시 대구를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내가 그간 살았던 곳이 이렇게 흉물스럽게 느껴지다니, 진짜 거지같은 경험이다. 


난 과연 이런데서 살면서 행복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최악임. 트라우마 생길 기세.


그리고 미세먼지... 너이색휘 만약 사람으로 폴리모프해서 내앞에 나타난다면 아주 꼬깃꼬깃 접어서 아교로 붙여버린다.


근데 글이 귀농일기라는 취지에 점점 안맞는거같다! 빨리 농사를 지어서 인증하지 않으면 제목을 '귀촌일기'로 바꾸라고 압력이 들어올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무슨. 이 변두리에 누가 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