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아빠 칠순잔치염 ㅎ
울아부지 드뎌 칠순 찍으심. >_<
실은 잔치한지 꽤 됐다. 울아빠 생일은 정월대보름. 그래서 아빠생일엔 언제나 오곡밥스페셜이 클리셰처럼 등ㅋ장ㅋ
축포를 터트리고 애드벌룬을 날려가며 축하해도 모자를 일이나, 엄마는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나는 나대로 대장염이 악화되서 흐느적흐느적하는 암울한 상황이라 칠순잔치를 취소하기로 했다.
아빠 본인이 칠순을 별로 떠들썩하게 기념하고싶어하질 않으셨다. 이런건 모녀가 무지 닮은듯;;
그래서 우리끼리 그냥 조용히 언제나 그래왔던것처럼 찰진 오곡밥을 지어먹고 넘기기로 했는데
그런데
대체 무슨 술수로 어떻게 교묘히 인맥관리를 했길래
전국 각지에 있는 아빠 팬분들이 어떻게 알고는(기밀에 부쳤었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바리바리 먹을것을 알아서 싸들고 와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는거 보고 엄마랑 나랑 나란히 졸도할뻔.
모자쓰신분이 울아빠.
실제 모이신 분들은 훨씬 더 많았다. 부엌쪽에 서 계셔서 사진상엔 전혀 안나옴. 나랑 엄마도 안나옴;; 사진도 너무 부랴부랴 찍은거라 아빠조차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날을 피해, 다른 날에 아빠의 칠순을 나중에 뒤에서 챙겨주신 분들도 있었음.
당황스러워서 허둥지둥하긴 했지만 아빠를 축하하러 먼 거리를 마다않고 모여든 분들을 보니 너무 고맙고 기뻤다.
나같은 히키코모리는 칠순 아니라 스코어 100을 찍은들 아무도 모르겠지만ㅋ
사진에선 잘 모르겠지만 완전 거대했음!
떡케잌이며 손수 구워온 전이며 고기며 촥촥촥 차려지기 시작하는데 새삼 '오오 울아빠 좀 짱인듯' 싶었다.
무엇이 그분들로 하여금 '어, 그분이 칠순이시라고? 그런 자리라면 절대 빠질 수 없지! 그럼 이제부터 가져갈 음식을 준비해볼까!' 하고 마음먹도록 만든 것일까? 그런 건 대체 무슨 종류의 마법이지? 소환마법 계열인가? 장판밑에 방문객을 부르는 기적의 칠순마법진이라도 그려져있나?
매력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울아빠를 보면 잘 알수있다. 늘 곁에서 공기처럼 그걸 느끼고 있음에도 배워서 차츰 비슷하게나마 구사할 수 있게 되긴 커녕, 난 도통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밋밋하고 멋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왜 이런건 안 닮은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하며 뭔 희한한 일이 갑튀해도 결코 당황해서 허둥대지 않고 차분하고 교양있게 대응하는 아빠의 그런 자잘한 스킬이 형성하는 외적 매력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더라도 아빠가 매력적인 사람이란 건 조금 같이 있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감히 아빠의 인격이니 됨됨이니 깊이니 지식의 양이니 따윌 건방지게 가늠할 주제가 못되니 내면적인 얘기는 이쯤에서 패스염;)
엄마한테 '이노무 가시나가!' 하면서 쥐어박힐 걸 각오하고 건방지게 감히 말해본다면
40세가 넘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어? 근데 나도 몇년 안 남았...-_-
맨 왼쪽이 울아빠, 옆은 나. 경북 사이버농업인회의 무슨 시상식이었더라... 암튼 거기서 찍은것.
울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난 울아빠보다 더 멋있게 늙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미 내겐 아빠라는 존재는 원래 멋진 게 당연한 거라는 착각이 들게 만들고, 엘렉트라 컴플렉스같은건 기본장착시켜주는 마성의 무언가 -_-; 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점차 늘기 시작하고 아빠가 헤쳐온 시간의 물리적인 양이 고스란히 누적되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도 내 눈의 콩깍지는 도통 벗겨지질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얼굴은 그저 점점 푸근하고 부드럽고 정이 넘치고 따뜻해져갈 뿐, 어째서인지 '어휴...ㅠㅠ 울아빠도 이제 참 많이 늙었구나' 하는 서글픈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존경하는 대상을 서글프게 여기게 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를 드신 아빠도, 젊었을때의 샤프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풍기던 아빠도 걍 내 눈엔 다 좋아보일 뿐이다.
아빠... 칠순이 다 뭐임... 그건 당연한거임요. 부디 훨씬 더 더 오래살아줘영... 아빠없음 엄마랑 나 완전 맨붕함. ㅇㅇ
기왕 아빠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어렸을 때의 아빠 얘길 조금 풀어봄.
대부분의 내 또래 세대 애들과 얘기해보면 아버지와는 얘기도 많이 하지 않고, 든든하긴 하지만 무섭고 권위적인 존재로 여겼었던 반면에
울아빠는 요즘 맨날 나오는 그 뭔 프로더라 암튼 추성훈이랑 추사랑 나오는거, 거기 나오는 추성훈 못잖은 딸바보 아빠였다.
밤이 지나서 아빠가 돌아오면 우리는 대쉬해서 그대로 자이언트 스윙 먹일 기세로 아빠한테 돌진했고, 아빠는 아침에 면도했다가 하루 새 자라난 수염때문에 까끌까끌한 턱을 우리에게 마구 부비며 우리의 온 얼굴에 사포질을 해줬었다. 따가워서 피하면서도 기분은 무지 좋았었다.
뽀뽀도 많이 하고,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여기저기 같이 놀러도 많이 다니고, 저게 동네를 들어엎을려나 싶게 설레발이 쩔면서 운동신경은 둔해서 맨날 다쳐서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아빠는 내가 다친 델 차마 똑바로 못 볼 만큼 안타까워했었다. 불효의 역사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ㄷㄷㄷ
이것저것 동요를 많이도 가르쳐주고(막상 학교들어가보니 5곡의 1곡은 아빠에게 배운 노래였을 정도;;), 어렸을 때 울집엔 전축과 카세트데크의 중간 쯤 되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걸로 클래식을 비롯해서 조용필아저씨 노래나 피아노소품, 유명 영화의 타이틀 BGM 같은 것도 아빠와 함께 많이 들었다.
그리고 춤추기 좋은 곡이 나오면 아빠의 발 위에 내 발을 얹고 왈츠를 췄었음. >_< 그거슨 모든 딸내미가 갖는 낭만의 최종진화형태!
(이미지출처 : http://sluggishs.egloos.com/1157986)
아빠랑 스킨쉽이 잦은 거야 뭐 말할 필요도 없었고, 아빠의 겨드랑이에 나 있는 조그마한 사마귀를 맨날 갖고놀았던 기억이 난다.
아빠의 등 위로도 자주 기어올라갔었는데, 한번은 그 위에서 잠들어버려서 아빠가 일어났을 때 굴러떨어져 놀라서 울며 깬 적이 있었음.
아빤 우리에게 영화극장도 많이 데려갔었다. 난 영화의 내용에 도통 집중을 못해서 뭘 봤는지 지금에서야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어지간히 유명했었던 건 아빠가 거의 다 보여줬었던 것 같다. 다만, 인디애나 존스가 채찍으로 못하는 게 없는 걸 보고 흉내낸답시고 긴 줄이 달린 아답터를 채찍처럼 휘두르다 형광등 박살낸 흑역사가 있었음;;;
쥬라기공원을 마지막으로, 아빠와 함께 영화관에 간 기억은 끊겼지만 그때가 이미 공포의 중 2 시절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아빤 꽤 오랫동안 우릴 영화관에 데려갔었던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미칠듯한 공룡빠가 되어... 덕으로 가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올라가게 되었...-_-
여기다가 아빠에 대한 추억을 다 털어놓다간 스크롤 압박으로 글이 미어터질테니 자세한건 나중에.
암튼 칠순을 전후로, 아빠에겐 쌔삥한 새 스맛폰이 생겼다. 'ㅂ'
아이폰 5와는 비교도 안되는 쩌는 그립감!
전부터 아빠가 스마트폰으로 교체하길 계속 바랬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갈아탐. 근데 아빠가 아직 사용에 익숙하질 않아서 내가 톡을 보내도 답변이 없엉;;
내가 잔뜩 가르쳐드려야지 했었는데 문젠 내가 뼛속까지 앱등이인 탓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생소하기 그지없어 나조차도 헤맨다는거 ㅋ
아빠한테 단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제 나한텐 됐으니깐 엄마한테나 좀 잘해줘여!!! >ㅅ<
내가 껴들 틈도 없을 정도로 두 분이 닭살돋게 알콩달콩하는거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