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비슷한 거

고령 먹거리 기행 02 - 쓰담쓰담에서 시간때우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2. 00:00

우리 집이 읍내에서 그렇게까지 먼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읍내의 볼일이 시간상 띄엄띄엄 있어서 집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나오기 무척 애매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쓰담쓰담을 간 날도 그런 날이었다.


추운 날, 은행을 가기 위해 뽈뽈이의 스로틀을 열라 땡겼지만 결국 시간에 못맞춰서 은행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주문 온 발효액(효소 아님미다, 발효액 ㅇㅇ)이나 부치러 옐로캡 고령지점으로 향했다. 근데 문이 잠겨있었다.


오돌오돌 떨면서 한참 기다리고 있자니, 다행히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택배기사분이 오셔서 두번째 볼일은 무사히 봤다.


그런데 세번째 볼일인 군청 국악당에서 하는 블로그 수업까지 무려 두어 시간이나 남아돌았다. 전산교육실은 문이 닫겨있었고 추위를 피할 곳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일전에 무슨 볼일로 갔었는진 모르겠지만 이미 한번 들렀었던 카페 쓰담쓰담으로 향했다.


위치는 이곳.


가게 앞에 뽈뽈이를 세우고, 무작정 들어갔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테이블 주변에 콘센트가 있어서 그 중 가장 편한 곳에 앉았다. 비록 폰충전도 하지 않고, 가져간 노트북도 켜지 않았지만 그래도 콘센트가 없으면 왠지 불안하다;;;


일단 아메리카노와 와플을 시켰다. 속이 비어있어서 더 추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을 감싸쥐고 있다가 손이 어느정도 녹았길래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그쪽 세상의 k씨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엔 머리아프게 글을 쓰는 것보다 단순노동에 좀더 가까운 그림을 그리는 쪽이 훨씬 시간 때우기에 좋다.


메뉴들. 손글씨와 일러스트들이 아기자기하다. 


원목으로 짜여진 카운터 겸 주방. 따뜻한 기운이 스멀스멀...


오디오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너무 시끄럽거나 요란하지 않고 적당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픈된 공간에서는 역시 이지리스닝이 진리.


지우개질을 열라 많이 해서 주변에 온통 지우개가루였음... 'ㅅ' ;;;;;

채색도 없는 주제에, 그쪽 세상의 k씨는 보기보단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건 왠지 노가다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


책이 많다. 그 중에서도 시집이 많다. 한참 독서를 미친듯이 해댈 때는 시에 별로 취미를 두고있지 않았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문학의 정수는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는 뻘글이나 싸질르는 사이비 글쟁이의 비루한 감상ㅋ


한 때, 잘 써진 글귀가 이미지나 향기 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환기시킨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나름대로 수사법 같은 것에 대한 책을 막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관련 책들은 하나같이 해당 스킬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가르쳐주기는 커녕, 무슨 해체주의돋는 혼돈의 카오스스런 철학얘기 뿐이라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에 시를 읽었었으면 아마도 무진장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을텐데. 굳이 공감각적 표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단어 몇 개의 단순한 나열로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시공으로 사람을 워프시켜주는 마법에 대해 어느정도 감이라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워낙 손발 오그라드는 걸 뭐든 질색팔색하는 성격 탓에 편견을 가지고 시를 대했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뻘쭘;;

이제부턴 시도 좀 봐야겠다.


그리고 시가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본다면 무지 재밌을 것 같다. 근데 매우 귀찮을것같기도 하다. 결국 언제 할 지는 알 수 없ㅋ엉ㅋ


흔들린 사진. 암튼 여기 되게 편안하다.


여기서부터는 다음날 낮에 외부를 촬영한 사진들임. 상지구이와 잉크마을이 무지개반사를 시전하는 통에 가게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밖에서 봐도 정취가 있는 편이다.


이번엔 한국야쿠르트의 역습


아 거참 대낮이라 반사 쩔지 말입니다.


여기 역시 간판이 조그만해서 못보고 지나칠 수 있는 가능성이 꽤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 조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기준은


1. 일단 의자가 편해야 하고 


2. 여기가 커피숍인지 클럽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빠른 비트의 격렬한 곡, 혹은 시종일관 울고짜며 너무도 가슴이 아픔을 과도하게 어필하는 나머지 노래 끝남과 동시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감정 절제는 엿바꿔먹은 지지리 개궁상 미드템포 발라드 같은 건 좀 안나왔음 좋겠고

(재즈가 좋지만, 너무 블루노트 쩌는 건 제외. 이지리스닝은 진리임)


3. 콘센트가 많은 곳일 것.


4. 너무 밝지 않을 것(자연광 제외)


이 네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샤프를 끼적거리면서 몇시간이고 카페에서 버틸 수 있다.


와플은 사실 시장통에서 먹는 게 젤 맛나지만 이곳의 와플은 길에서 파는 그런거랑 퀄릿이 하늘과 땅차이다. 잔치국수와 파스타의 차이라고 할까. 조금이라도 식도락에 조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쓰담쓰담에서 먹은 와플과 길에서 먹는 와플을 비교해보는 것조차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난 고기빼고 뭐든 잘먹엉ㅋ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하고 쉬고가고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카페는 사실 생각보다 흔치 않다. 


나오면서 사장님 분과 담소를 좀 나누었는데, 아마 내가 갈 곳이 마땅찮으면 첫빠따로 쫓아갈 곳이 여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특히나 추운 겨울엔 더욱.


커피맛은... 난 맛에 둔감해서 그냥 별생각없이 얌냠한 나머지 잘 기억이 안낭... ;;;